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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나고 자라다 계룡시로 이사 온 지가 십여 년은 된다. 이곳이 나의 제2의 고향인 셈이다. 그런데 일들의 대부분이 대전에 있고 해서 출퇴근을 자주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십여년이 되었는데도 계룡시에서는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은 지역사회 시민으로서 그만큼 바람직한 모습은 정말 아니다. 앞으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곳에서 뼈를 묻을 만큼 오래오래 살아야 할 입장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딱 하나 좋은 것이 있다면 주위를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집 뒤뜰에서 땀을 뻘뻘 흘린 작업복 차림으로도 볼 일을 보러 엄사 사거리를 활보하기도 하고 특별히 예의 차릴 일이 아니라면 굳이 양복을 입는 것도 싫어한다. 좋은 뜻으로는 털털하다고 하지만 다른 뜻으로는 지저분하게 살아왔다고 할 수가 있다.

지금도 가장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아내와 옷 사러 백화점에 가는 것이다. 백화점에 가면 눈이 반짝 빛나고 힘이 불끈 쏟는 아내와는 달리 답답하고 지루함을 느껴 심드렁하니 건성으로 함께 다닌다. 그러다 우리와 같은 연배의 부부들 중 남편들과 매장 통로에서 서로 마주 칠 때면 위안 아닌 위안을 마음속으로 한다. "어휴! 당신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이렇게 끌려왔네!" 하고 비애 섟인 눈빛을 서로 교환을 한다.

이렇듯 내 옷차림에 신경 쓰는 것도 싫어서 있는 그대로 그냥 살아왔다. 이렇게 산 것은 그 만큼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 한 몫 한 것도 있다. 그런데 이제부터라도 옷차림에 각별히 신경을 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앞으로 하게 되었다.

얼마 전 고2인 딸과 대화를 하다가 문득 딸의 입에서 예전에는 아빠가 왜 누추한 옷차림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딸이 중학교 시절 몇 번은 무리지어 오는 딸의 친구들과 번화가 길에서 마주친 적이 더러 있었기 때문에 짐작은 했지만 딸이 그동안 전혀 내색하지 않아서 그냥 넘어갔는데…. 고2가 되어 지금은 아빠를 충분히 이해를 한다나! 하면서 하는 말이 "왜 거지들이 마음 편하게 사는지 이제 알게 되었다나? 하며 아빠를 거지의 마음과 동급(?)에다 놓아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답하기를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살기 때문에 아빠도 거지와 똑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려 버린 적이 있다. 마음속이 조금은 뜨끔했다. 얼마 전에 딸에게 하던 말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아무리 네 몸이지만 100% 네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몸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지시킨 적이 있다. 너의 몸에는 아빠 몸도 들어가 있고, 엄마 몸도 들어가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 몸도 조금씩 들어가 있다고 그래서 네가 기쁘면 같이 덩달아 기쁘고 네가 아프면 덩달아 아픈 것이라고 항상 행동과 마음가짐을 네 위주로 보지 말고 가족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서 살아야 한다고 주지시킨 적이 있었다. 그렇게 말한 아빠의 말이 딸 입장에서 보면 조금은 어패가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시 말해 옷차림에 대한 아빠의 행동에 딸도 똑같은 입장이었을 것이란 생각에서 였다.

그런데 딸의 그 다음 답변에 이내 안도는 했다. 중학교 때는 신경이 좀 쓰였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지금은 자기 친구들과 학교 선생님들까지도 아빠가 어떻게 하고 다니든지 무식한 노가다꾼이나 허드레 농사꾼으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가 예전에 딸이 학교 교지를 만드는데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그런 우려를 많이 불식시켰다고한다. 학교 교지 안에 부모 글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 고민 끝에 아빠가 쓴 글을 가져갔고 그 중 두편의 시가 교지에 수록되어 출간 되었는데…….

친구들이 그것을 본 모양이었다. 다른 부모들의 글은 어른으로서의 가르침 위주로 글을 썼다면 아빠는 그저 자연의 느낌이나 사랑에 관련된 시를 읊었으니,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애들에게는 그냥 내 글이 무척 좋았나보다. 선생님은 아빠 직업에 대해 궁금해 하시고 친구들은 아빠를 닮아서 너도 글을 잘 쓴다는 소리를 들었다나! 하며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때 지나가는 소리로 이제는 친구들한테 너의 체면 올려 준 것이 분명하지! 하며 말장구를 친 적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내 딸이 겉모습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첫인상이나 외형적인 모습은 상대방에게 순간적인 끌림을 줄 수 있으나 그 기간이 너무 짧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폼생폼사는 메뚜기도 한 철처럼 그 수명이 길지가 않다. 결국에는 내면으로 사람을 상대해야한다는 것을 아빠처럼 나이가 들면 알 텐데 아이들은 이것을 수긍하면서도 젊음이 그리 내버려두지 않나보다. 그래서 딸에게 항상 책을 많이 읽으라고 권하는 편이다. 삶의 굴곡이 많고 경험이 많으면 내면도 그만큼 깊어지지만 그것을 딸에게 절대 권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 딸은 정말 곱게 자라서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것이 우리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건희 회장처럼 능력 있는 아빠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아빠로서의 삶을 살고 있으니 지금 처지에서 달리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다. 그래서 부모보다 편안하고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좋은 책들을 많이 읽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 올 가을이 가기 전에 좋은 양서들을 추천해주고 싶었는데 벌써 고2라 그것도 쉽지 않다. 대학을 가기 위해 학교 교과목 공부에 전념해야 하니 그것도 일이 년 후로 미룰 수 밖에 없다. 좋은 대학에 갔으면 하는 것이 모든 부모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이라도 내실을 단단히 키우고 질풍노도 같은 학창시절을 무던하게 넘어갈 수 있는 우리 아들 딸들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회복지법인 이사장 송인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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