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멍 (비를 보며 멍때리기)!
내리던 비가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우산 없이 사무실로 발길을 재촉했다.
장마철이다.
예보는 다른 해에 비해 길고 엄청 온다.
걸으면서 오랜만에 시원함을 느꼈지만
비피해가 전국적으로 너무 심하다
비 오는 날을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절퍼덕대며
듬성듬성 생겨난
물 고인 웅덩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먹은 공을 차던 그 어린 시절!
입김처럼 열을 발산하고 흰 치아를 내밀며 밝게
웃어주던 그 얼굴들!
희미했던 그 얼굴들이 비가 오면
서서히 기억이 난다.
그렇게 살았었지!
아무 거리낌 없이 우리는 그렇게 표현하며 살았었지!
뛰고 또 뛰다 보면
머리에서 해결 못 할 것도
마음에서 다스리지 못할 성장통도
비를 통해서 그렇게 해결하려고 했던 것!
마치 노예의 삶처럼 살지도 모를
전초의
애피타이저의 그 여운의 맛처럼!
이제는 긴 노동의 시간이 지나 어느덧 육십을 넘어섰다.
비가 오면 불편한 것들이 더 많지만
비가 잠시 멈춘 그사이에 촉촉한 길을 걷는 것도
이제는 인생의 디저트가 되어버린
그 신선함도
그 기분에 사로 잡혀
멍 때리며 비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