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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림 이사장님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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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보니 올 추석도 그리 멀지않았다. 이맘 때 어스름한 저녁이 되면 아이들과 가까운 두계천으로 산책을 자주 나간다. 아마 일년 중에 산책 다니기가 가장 좋은 계절이 아닌가 싶다. 산책을 돌다보면 동쪽하늘이 순간 환해지고 부끄럽다는 듯이 초승달이 윙크를 하며 떠 오른다. 가로등이 하나하나 켜지고 그 사이로 볏논에서 황금색 빛이 은은히 퍼지다가 신선한 가을바람이 내 앞으로 날려 보내면 보는 즐거움에 걷는 발걸음이 제법 가볍다.

문득 십여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추석이 가까이 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분이시다. 아버지 슬하에 오형제를 두셨고 불행히도(?) 내가 막내다. 막내라서 다른 형들에 비해 더 예뻐해 주신 면도 분명 있지만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가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아버지가 팔십 이세의 나이로 병치레 없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기 전까지 다른 형들보다 막내인 나를 더 좋아하셨고, 나와 함께 살기를 더 바라셨다. 나도 흔쾌히 생각하고 있었지만 결국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형들이 궁금한 것이 있었다. 자기들이 아버지에게 무슨 부탁을 하려면 완고한 고집으로 거절당할 때가 있었다. 그러면 전혀 들어주지 않던 일들도 막내인 내가 나서서 설득을 하면 아버지는 그동안의 완고함을 이내 꺾으시고, "그러냐"하며 흔쾌히 들어주시는 모습을 보이셨다. 그런 모습이 단지 막내라서 그러기 보다는 그 너머에 다른 뭔가가 있다는 것을 형들도 눈치로 안다. 그러나 딱히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며 살아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어린 시절에 보낸 추석 같은 명절과 연관이 있음을 알게 했다. 추석날 아침이 되면 차례를 지내고 십대조 조상까지 성묘를 다니면서 가는 곳곳마다 친지방문을 한 적이 있다. 그럴 때면 항상 동행한 사람이 막내인 나다. 언제부터인지는 그리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어린 나를 데리고 많게는 삼일, 적게는 이틀을 데리고 다니셨던 것 같다. 동네 소꿉친구들은 때깔 옷 입고 문방구에서 갖은 장난감을 사며 즐거움을 만끽할 때 나는 고행 아닌 고행을 해야 했다. 지금은 승용차로 반나절이면 돌아다닐 곳을 그때는 버스도 들어가지 않던 곳이라 오랫동안을 걸어야했다. 그런 곳을 사방으로 삼일은 돌아다녀야지 성묘를 다 마칠 수가 있었으니 어린 나로서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흔쾌히 아버지를 따라나선 것을 보면 그런 고행에도 아버지와 온종일 다니는 것을 그리 싫어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와 군대 삼년 빼놓고는 아마 오랫동안을 아버지와 같이 동행을 했다. 그 성묘 길 위에서 아버지와 많은 대화가 오고갔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 조상에 대한 일화, 그리고 아버지가 살아온 삶의 이야기들을 그때마다 조목조목 들려주셨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걷던 성묘길이 그리 지치지 않았던 걸로 기억이 된다. 아버지와의 그런 동행을 통하여 서로가 일찍부터 마음이 통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교회에 나간지가 대략 십년은 된다. 그러나 아직도 나일론신자다. 믿음이 그리 크지 않고 때에 따라 들쑥날쑥하다. 그래도 오랫동안을 교회에 다니다보니 몇몇 찬송가들은 자연스럽게 귀에 들어온다. 그 찬송가들 중에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이라는 노래가 있다. 주와 동행을 모티브로 하면서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와의 관계를 찬송한 노래인데 그 가사 내용 중 후렴구 "주와 나와 동행을 하면서 서로 친구 삼으셨네! 우리 받은 그 기쁨은 남 알지 못하네!"로 끝난다. 서로가 친구가 되었지만 남들은 알지 못한다는 그 가사처럼 어찌 보면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도 그러한 관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아버지와 내가 왜 친했는지 궁금해 하는 형들에게 딱히 설명한 적은 없다. 그러나 주님과 동행하며 친구가 되듯 아버지와도 오랫동안을 같이 동행한 이유로 그런 믿음을 갖게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봤다. 가끔은 자동차의 편안함이 소중한 것들을 잃게 한다. 지금은 가족이 서로가 알 수 있는 심적 여유를 찾기가 어려운 사회적인 구조로 되어있다. 서로가 통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지만, 우리는 그럴 시간과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올 추석만이라도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나 가족들끼리 삶의 대화도 나누고 서로를 보듬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그런 뜻깊은 추석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사회복지법인 두드림 이사장 송인겸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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