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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림 이사장님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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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평등성!

 

공자 사상이 담긴 <논어(論語>에 보면 지천명(知天命)이라는 말이 있다. 나이 오십이면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내 나이 오십을 넘은지도 몇 해가 지났다. 공자 같은 성인의 일생을 일개의 범부가 따라 하기에는 어찌 보면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지혜를 받아드리는 용량이 다를 뿐 공자님이나 우리나 똑같은 인간인지라 일개 범부도 나이 오십을 먹고 부터는 변모되는 것이 있다. 하늘의 뜻은 잘 몰라도 매년 때만 되면 어김없이 오는 사계절을 맞는 자세가 점점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싯적에는 방학이나 소풍 또는 운동회 같은 특별한 날을 빼고는 나머지 요일들은 계절의 느낌도 없이 그냥 술렁술렁 넘어갔다면 나이 오십을 넘은 지금에는 이 모든 것들을 더 유심히 보고 더 세심히 관찰하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을 추스르기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푸른 잎에 가려 색깔을 구분할 수 없었던 가을의 대표 과일 격인 감이며 대추들이 그들이 벌겋게 익기도 전에 먼저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 가끔은 나 자신을 놀라게 한다. 시골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이것이 뭐 별거라고 하며 코웃음 칠 일이다. 그렇지만 도시에서만 자란 사람으로서는 그만큼 틀리다. 그래서 나이를 먹는 만큼 계절을 맞는 것이 다 다르고 더 새롭다. 올 여름은 다른 해에 비해 비도 적게 오고 유난히 더 더웠다. 그러나 찜통더위도 세월이 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지 9월 초 한낮의 더위가 어스름한 저녁때가 되면 어김없이 바람 끝에 시원한 감이 들기 시작한다. 이럴 때면 마음엔 뜬금없는 허탈감이 자리한다. 벌써 올 여름도 다 지나간 것인가? 하는 아쉬움이다. 여름에 한 일이라고는 딱히 없는 것처럼 지나간 일들이기에 기억이 둔감하다. 그러나 분명 여름 뙤약볕 밑에서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며 공사 일정을 맞추느라 쉴 틈 없이 고군분투했는데……. 그리고는 에어컨 바람 앞에서 오랫동안을 물수건을 얼굴에 대고 열기를 식혔던 날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지나간 고통들도 결국 세월 앞에서는 그만큼 무뎌져서 점점 기억들이 희미해지니 지금은 그냥 아무렇지도 않다. 이것보다 세월이 가고 계절이 바뀌는 것에 대한 허탈감들이 더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렇게 많은 일들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지나보면 모든 것이 다 부질없는 일인 듯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듯 허무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삼사십 대에 가졌던 성취 욕구가 오십대 나이에 와서는 별 감응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사는 환경과 자연 변화에 대한 느낌에 더 반응을 하게 한다. 그래서 지천명(知天命)이라는 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감히 해보게 됐다.

가을이 오면 좋은 계절인 만큼 해야 할 일들이 참 많이 있다. 그러나 계절을 맞는 자세가 더 또렷해지니 심적으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맨 먼저 추석이 생각이 난다. 멀리 떠나있던 식구들이 한 곳으로 모이고 어머님의 정성이 가득 담긴 차례음식으로 늦은 밤까지 담소를 나누느라 잠을 설쳤던 그 가을 추석들이 아직도 내 마음속에 오래 남아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어머니는 초등교육 졸업장도 없던 분이셨다. 그러나 어머니가 일흔 중반의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무식한 분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대학을 졸업한 며느리 다섯을 두셨지만, 삶의 지혜에서는 그들에게 전혀 밀린 적이 없는 그런 분이었으니……. 전문 분야나 새로운 지식에서는 분명히 뒤쳐졌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오며 쌓여왔던 삶의 지혜들은 우리가 보고 듣는 수많은 지식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상위 영역이었음을 새삼 느끼게 했다. 가끔 초등학교 동창친구들을 만난다. 이런 느낌을 똑같이 받은 적이 있다. 만나는 친구들의 직업이 각자가 다 다르고 학력도 다 다르다. 명문대를 나온 친구도 있는 반면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도 있다. 그런데 50대 나이가 되어 동창 모임에 참석해 보면 명문대 나온 친구나, 고등학교 중퇴한 친구나 서로간의 지혜의 평등함을 느낀다고나 할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상중하(上中下)는 보이지 않고, 각자의 삶에서 터득한 지혜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친구들과의 대화에 상하(上下) 구별이 없이 매우 재밌어진다. 더구나 학력의 고하(高下)나 지식의 양(量)보다 삶의 굴곡이 많은 친구의 입에서 나오는 삶의 지혜의 보따리를 더 듣고 싶어 하기까지 한다. 이는 경험을 통해 살아온 이야기들이 우리가 주입식으로 얻어온 지식으로는 대신할 수가 없음을 증명하는 꼴이다.

비록 실패한 경험이라도 이것을 듣는 입장에서는 한편의 파노라마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할 만큼 그의 인생이 진지하고 소중하다. 그래서 이 오십대의 모든 만남이 소중하고 즐겁다. 상하(上下) 구별이 없는 지혜의 평등함이 공자가 말하는 지천명(知天命) 즉 하늘의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했다.

학교를 다닐 때도 그렇고 직장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성적에 따른 고과 점수로 주위와 비교하여 줄서기를 하고 이것에 미달되면 도태가 되고, 다시 또 다른 곳에 줄을 서고 그러면서 우리는 수십 년을 보냈다. 지식의 양(量)이 돈의 양(量)과 비례한다는 신념으로 공부에 전념하고 그러다보면 행복도 덩달아 올 것처럼 그렇게 착각하며 인생을 살아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지식은 결코 삶의 지혜를 넘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오랫동안 산전수전 겪으며 살아온 50대 나이의 사람들은 그래서 그런지 모두가 지혜롭다. 공자님의 지천명(知天命)이 어렴풋이 증명되는 것 갖기도 하고, 가을초엽을 맞는 오늘 같은 밤이면 세월이 덧없이 흘러감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그런 시절을 보내고 있으니, 그래서 가을밤은 외기러기의 날갯짓처럼 외롭고 쓸쓸하다. 그래서 이맘 때 추석이 있는 것이 참 감사하고 고맙다. 지혜의 평등성을 느끼면서 모두가 즐거운 추석을 행복하게 보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사회복지법인 두드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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